안녕하세요, 제19회 국제 언어학 올림피아드(이하 IOL)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민족사관고등학교 3학년 강한별입니다.

여러 언어 사이의 관계나, 언어가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 등에 흥미를 느끼며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선배가 저에게 언어학 올림피아드를 추천해주었습니다. 저는 ‘언어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대회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국 언어학 올림피아드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연습문제를 풀어보며, 생소한 언어들의 문법 규칙 등을 찾아내는 과정에 점차 매료되었습니다. 문제를 처음 볼 때에는 무질서한 말뭉치로 보이던 것 속에서 확고한 규칙과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첫 도전에서 바로 국가대표라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당해 한국 언어학 올림피아드(이하 KLO)에서는 동상을 수상하였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인 아시아-태평양 언어학 올림피아드(이하 APLO)에서는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작 한 번 벽을 마주했다고 포기하기에는 언어학과 또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재밌었습니다.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보고, 언어학 개론서와 심화 이론서를 읽는 등의 꾸준한 연습을 하면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2021/2022년 참가한 KLO와 APLO에서 각각 은상과 동상을 수상해 올해 맨섬에서 개최한 IOL에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4월 중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는 공지를 보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한국 대표팀뿐만 아니라 관심사가 비슷한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에 설레었습니다. 하지만 곧 걱정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세계의 쟁쟁한 실력자들과 경쟁할 수준이 될까?” 고등학교 3학년에 돌입하여 부쩍 바빠져 많은 준비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틈틈이 2003년부터의 IOL 기출 문제들을 풀어보며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습니다.

7월 20일, 드디어 인천 공항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 만났습니다. 대회는 7월 25일부터였지만, 대표팀 간의 단합을 위해 먼저 런던 관광을 하기로 하여 일찍 만났습니다. (실제로 상기한 이유로 영국 관광을 하고 온 국가가 정말 많았습니다) 전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는 여러 얘기를 나누었지만, 역시 첫 만남은 어색했습니다. 그래도 서로의 학교생활, 언어학에서의 관심사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미 비행기를 탈 때는 어느정도 친해졌습니다.

런던에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팀 리더(인솔자) 형의 인솔 아래에 많은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서로 정말 친해졌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언어학 문제도 풀어보고, 또 저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던 팀 리더 형과 대화하면서 많은 이야기와 조언을 듣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24일 런던 관광을 끝내고 비행기를 이용해 대회가 개최되는 맨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묵는 팰리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 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세계 각국의 언어가 한자리에서 들리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대회 참가 이상의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대회는 1일 차에 개회식, 2일 차에 개인전, 3일 차에 문화교류, 4일 차에 팀전, 5일 차에 폐막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일 차 개인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총 6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문제를 보자마자 아이디어가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묶어보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 정도 풀리는 듯했습니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다른 문제로 넘어가 풀면서 잠시 머리를 환기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IOL에서는 화자가 없거나, 역사적인 이유로 화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소수 언어가 출제되었던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4일 차의 팀전은 영국 여행을 시작으로 다져진 단합심과 함께 서로 역할을 분배하여 풀었습니다. 중세 만주어가 출제되었고, 조선 시대에 작성된 만주어 교본 데이터를 이용해 문제를 풀었습니다. 팀전은 개인전에 비해 풀 문제가 많고 데이터가 방대하게 주어지는데, 그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각 팀원이 서로의 역할을 다해주며 집중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는지 대표팀에서 참가한 두 팀이 금메달과 장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각 날에 예정된 일정을 끝내면 자유시간이 항상 주어졌습니다. 주로 이 시간 동안 학교에 마련된 보드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하며 다른 참가국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시간 동안만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호텔에서,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 등등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았기에, 초반에는 서로 대화를 하다가 일정이 끝나갈수록 점점 보드게임을 하며 더욱 친목을 다지는 시간으로 변해갔습니다. 저는 유럽권 친구들과 ‘Mao’라는 카드 게임을 여러 번 했었는데, 할 때마다 규칙이 바뀌어서 꽤나 애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날 시상식과 폐회식이 끝나고도 역시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어를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한글과 기본적인 표현을 알려주고, 저 또한 그 친구들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다들 그날이 마지막임을 너무나 아쉬워했고, 작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서로서로 싸인을 받으러 다니고,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고. 저는 대한민국 대표팀 단체 티에 저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싸인을 받았는데, 아직도 그 티셔츠에 적힌 이름들을 볼 때면 IOL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이전까지는 언어학에 막연한 관심만 있었다면, IOL 이후부터는 언어학을 대학에서 전공으로 공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을 만큼 순수한 학문적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각종 언어나 정서법을 다룬 논문을 찾아 읽고 있을 만큼 대회는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타국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서로 간의 유대를 쌓아나가고, 다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아나가는 과정은 저에게 오래도록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국가의 새로운 사람과 교류하는 것. IOL이 문제 풀이 이상으로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입니다. 대회의 결과보다도, 5일의 시간 동안 거쳐 간 일들이 정말 의미가 깊었고,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차 더 이상 참가자로 참여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 가장 뜻깊은 대회였던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어떤 방식으로든 꾸준히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 수기를 읽어주신 여러분들도 꼭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도전해보시길 바라며, 이를 통해 소중한 추억을 쌓고 새로운 결심을 다지는 계기를 갖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9월 1일
작성 | 강한별
– 민족사관고등학교 3학년 재학
– IOL 2022 Isle of Man 국가대표 (글 팀), 단체전 장려상
– APLO 2022 동메달, KLO 2022/23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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