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올림피아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19년, tvn에서 방영한 ‘문제적 남자’에서였습니다. 평소에 언어학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스도쿠와 같이 논리사고력을 요구하는 퍼즐을 즐겨 풀어 왔습니다. 출연한 학생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언어학 올림피아드에서 제시하는 문제의 유형이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과학 올림피아드임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교육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어려운 개념이나 문제 풀이 팁과 같은 사전지식이 결과를 좌우하지 않고 순수한 두뇌의 능력, 추론력과 문제해결력으로만 실력을 겨루는 대회였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연습문제를 풀고 해설을 찾아보면서 언어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마다 단어나 어순, 문법 구조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사고의 체계인 개념 범주까지 다르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여타 퍼즐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꼈고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대회 참가에는 생각이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학교에 언어학 동아리가 있음을 알게 되자 의욕이 생겼습니다. 저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그 동아리의 부장을 맡고 있었기에 저 역시 그 동아리에 가입하였고, KLO에서 은상을 수상하여 APLO 참가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때까지는 문제 풀이나 언어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는데, 통신교육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음운론부터 시작해 화용론까지 언어의 층위를 따라가며 언어에 존재하는 다양한 특질을 알게 되었고, 매주 열 개 가량의 연습문제를 풀면서 문제 풀이 실력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KLO와 달리 APLO부터는 풀이 과정을 써야 했는데, 규칙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기 쉽게 표의 형태로 나타낸 후 조교님들께 이에 대한 첨삭을 받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APLO는 확실히 문제의 호흡도 길고 정보량도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저는 한 문제를 완벽히 분석하는 것은 어렵기에, 조금씩이더라도 많은 문제를 분석하자는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5개 문제에서 모두 조금씩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특히 4번 문제였던 수사 문제에서 점수를 많이 획득하여 2위로 IOL 출전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IOL까지는 약 세 달 정도 남은 상황이었지만 고3이라는 신분 탓에 학교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영국으로 떠날 때까지 강의자료와 기출문제를 다시 돌려보았습니다.

유럽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대회보다는 여행을 간다는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굉장히 어색했지만 개인전 전에 먼저 다같이 시내 구경을 하니 훨씬 친해질 수 있었고, 서로 말도 트면서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서로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를 먼저 진행했다면 서로 어색한 존댓말로 소통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상상이 됩니다. (어쩌면 이 점이 이번 한국 대표팀이 실적이 좋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ㅎㅎ) 맨섬에 도착해서 대회를 진행하는 동안에서도 세계 각국의 학생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는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마음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IOL 문제는 확실히 APLO보다도 어려웠고, 심지어 자신 있었던 수사 문제가 나오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러 문제를 건드려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더니 3개의 문제를 풀었고, 나머지 2개의 문제에서 일부 규칙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운이 좋으면 은메달정도 타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예상 밖의 성적인 세계 2등으로 금메달을 타게 되어 매우 뿌듯했습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팀전에서도 1등을 하였습니다. 1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그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시상대 위에서 태극기를 펼쳐든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친구들과의 영국 여행, 외국 학생들과의 교류, 그리고 언어학 올림피아드까지 모든 순간에서 이번 10일간의 일정은 저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언어가 사람들 간 의사소통의 수단이듯, 언어학 올림피아드 역시 경쟁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고 화합하는 교류의 장입니다. 언어학이 진로가 아닌 학생이더라도 이 대회에서 배울 수 있는 논리력, 추론력, 사고력은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어떤 분야에서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대회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고, 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9월 1일
작성 | 육준형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3학년 재학
– IOL 2022 Isle of Man 국가대표 (말 팀), 개인전 금메달(전체 2위)
– APLO 2022 은메달, KLO 2021/22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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